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라드 3세 (문단 편집) === 흡혈귀 이미지 === 블라드 가시공이 죽은 후 얼마 뒤 공교롭게도 [[인쇄술]]이 발달했다. 대체로 블라드 가시공의 잔학함을 비난하거나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민담집이 독일 일대에서 인쇄술의 초기 저작물로서 퍼졌다. 사실 이때만 해도 유달리 잔혹한 폭군 정도의 이미지 정도만 있었다. 굳이 독일에서 이런 민담이 퍼진 것은, 가시공에게 된통 당한 독일 상인들의 피해 사례 보고집의 이미지도 없잖아 있었을 것이다. [[파일:vlad-the-impaler-eating.jpg]] 꼬챙이로 꿴 희생자들의 시신 사이에서 식사를 즐기고 있는 블라드 가시공을 묘사한 당대 독일의 판화. 1499년. 단 웃긴 점은 루마니아 민담에서의 블라드 가시공과 [[흡혈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건 다른 흡혈귀의 대명사격인 질 드 레(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피와 관련된 흡혈귀 실존인물은 헝가리의 [[에르체베트 바토리]]뿐이다.] 현재 드라큘라 성으로 유명한 루마니아의 '브란 성'은 사실 블라드 가시공 본인이 살았다는 기록이 일절 없는 곳으로[* 차라리 브란 성은 블라드 3세의 정적과 크게 연관이 있다고 말하는게 좋을 성이다.], 그냥 [[소설]] 《[[드라큘라]]》에 나오는 드라큘라 성의 모티브가 되었을 뿐이다. 블라드 가시공이 흡혈귀 전설과 연관된 건 1897년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가 처음이었다. 스토커의 초고에서는 제목과 흡혈귀의 이름도 '''왐피르 공'''(Prince Wampyr)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브람 스토커가 작품을 위해 조사를 하다, 블라드 가시공의 별명 '드라큘라'가 [[간지폭풍]]이라고 여긴 나머지[* 사실 《드라큘라》 초반의 -드라큘라의 손님- 챕터가 짤린게 너무 일찍 흡혈귀의 존재가 드러난다는 이유도 있었는데, "왐피르 공"이란 이름은 '''나 흡혈귀요'''라고 광고하는 이름이라 ([[밤피르]]를 살짝 변조한 것이다. 보통 W은 독일어 등에서 'ㅂ' (영어의 v)으로 발음된다. 즉, 왐피르나 밤피르나 그게 그것이다.) 괜찮은 대체제로 '드라큘라'란 이름이 여겨진 것이다. 더불어 이 왐피르 공은 오스트리아의 [[스티리아]] 출신으로 되어 있었는데, 드라큘라보다 이전의 히트작 흡혈귀 소설이었던 《[[카르밀라]]》의 무대가 오스트리아의 스티리아였다. 즉, 왐피르 공이라는 초반 설정으로 갔다가는 《카르밀라》의 짝퉁 취급을 당할 위험도 있었다. 실제로 스토커의 노트를 보면 집필 초반에는 왐피르 공이라고 쓰다가 드라큘라로 이름이 바뀌고, 캐릭터 리스트에도 왐피르 백작이란 이름에 줄을 긋고, 드라큘라로 바꾼다.] 흡혈귀의 이름을 드라큘라로, 출신지를 [[루마니아]]로 정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드라큘라 백작|《드라큘라》의 흡혈귀]]와 블라드 가시공간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작위부터 [[프린스|공작(보이보드)]]이 아니라 백작(카운트)이며, 소설에서 언급되는 성장과정도 블라드 가시공과 딴판이다. 무엇보다 유명한 말뚝형이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중에서 [[아브라함 반 헬싱|반 헬싱]]이 조사를 한 후, "이 놈은 오스만 제국과 싸운 그 드라큘라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언급을 했다.[* [[드라큘라]] 챕터18, He must, indeed, have been that Voivode Dracula who won his name against the Turk, over the great river on the very frontier of Turkey-Land.] 다만 드라큘라 백작 항목에서도 언급되듯이 백작은 블라드 3세가 아니라 그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소설 《[[드라큘라]]》가 엄청난 대박을 치고, 기존의 흡혈귀 소설 및 민담들을 완전히 뛰어넘어 흡혈귀의 전형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상황에서 드라큘라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블라드 가시공에게 이 이미지가 덧씌워져 버렸다. 결국 1975년 프레드 세이버헤이겐(Fred Saberhagen)이라는 작가가 소설 《드라큘라 테이프》에서 "블라드 가시공이 바로 그 소설 드라큘라의 드라큘라다!"라고 한 후에 동시다발적으로 블라드 가시공=[[드라큘라 백작]]이라는 창작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그 중 유명한 것만 봐도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 영화]], [[히라노 코우타]]의 만화 《[[헬싱]]》, TV 드라마 <영 [[인디아나 존스]]>에서의 한 에피소드, 엘리자베스 코스토바의 소설 《[[히스토리언]]》의 '체페슈'라는 캐릭터 등등이 있다. 이것 뿐이라면 모를까, '''중세때부터 드라큘라는 흡혈귀로 유명했다'''거나 '''스토커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드라큘라를 흡혈귀로 설정한 것'''이라는 역사왜곡 수준의 학설이 나오는 판이 돼서 골머리를 앓는 학자들도 있었다. 오죽하면 오역된 시를 두고[* 시의 내용이 "블라드 체페슈는 적의 피에 빵을 적셔 먹었다"고 오역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블라드 체페슈는 적의 피로 손을 씻었다"였다.] "거봐, 블라드 체페슈는 흡혈귀였어!"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나온 판이었다. [[http://www.ucs.mun.ca/~emiller/divorce.html|드라큘라와 체페슈 백작을 동일시하는게 왜 말이 안되는지를 설명하는 글]] 당연히 루마니아인들은 서구의 온갖 매체들이 만들어낸 흡혈귀로서의 블라드 가시공의 이미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시절에는 소설 《드라큘라》나 드라큘라 관련 영화가 출판금지되는 등, 서구권의 왜곡에 맹렬하게 항의했던 적도 있었다. 허나 1980년대에 루마니아가 외채난에 빠지면서 결국에는 차우셰스쿠 패거리도 드라큘라 호텔의 건설허가를 내주었다. 1980년대 《소년경향》 지에서 이걸 다루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공산국가 루마니아가 금기시하는 상황임에도 다뤘을 정도였다. 해당 기사는 [[이로마]]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종업원들이 검은 옷차림이라든지 망토 차림으로 관에 누워 나오기도 하고, 주로 해외 관광객을 전문으로 하는 호텔이었다. 이후 [[공산주의]]가 망하고 《드라큘라》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더 크게 [[관광]]산업을 개발하는 중... 이래저래 돈이 된다.[* 만화가 [[이원복]]은 자신의 만화 《[[현대문명진단]]》에서 드라큘라를 보면서 무서워하기는 커녕 $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도리어 드라큘라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흡혈귀의 모습을 한 자본주의가 드라큘라의 피를 빨아먹으려 드라큘라를 쫓아다니는데 드라큘라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나 좀 그만 빨아먹어라"'라고 도망다니면서 신세한탄을 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그나마 블라드 가시공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라면, 흡혈귀 [[드라큘라]]의 명성 덕에 덩달아 블라드 가시공의 명성도 전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블라드 가시공은 그와 마찬가지로 당대 [[메흐메트 2세]]의 [[오스만 제국]]에 성공적으로 저항했던 [[알바니아]]의 영웅 [[스칸데르베그]], 메흐메트 2세에게 대승을 거뒀으며 블라드 가시공과 관련이 깊었던 [[헝가리]]의 [[후녀디 야노시]]와 [[마차시 1세]] 부자, 어쩌면 메흐메드 2세 본인보다도 세계적으로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다만 악명으로 더 남았다는 점이 문제지만... 루머로 사람을 죽여 피를 빨아먹었다든지 잡범까지 꼬챙이에 뚫어 세워둬서 천천히 죽어가는 걸 보고 술을 마신 미친 군주라느니 별별 악명도 여전히 남아있다. 《[[퇴마록]]》 <세계>편에서 그의 영혼과 대화를 하는데 "난 내 나라를 지키려 했는데 후세에선 피에 미치고 학살에 미친 인물로 길이 남게 되었소...."라고 씁쓸해한다. 그래도 명성이 퍼지는 만큼 목숨까지 바쳐가며 오스만에 맞서 최후까지 싸운 그를 재평가하는 의견도 점점 늘어가고 있으니 약간이나마 다행인 일이다. 낮은 신분의 애인과 관련된 야사를 생각해보면 흡혈귀 특유의 로맨틱함도 갖추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야사인 만큼 실제로도 그랬는지에 대한 신빙성은 떨어지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